2017년 5월 20일 토요일, 정동 산 다미노 카페에서 문선희 작가의 강연이 있었다. ‘묻다-살처분된 동물과 함께 인간성마저 묻혀버린 땅에 대한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강연은 생명이 가장 화사한 때 진행되어 더욱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문선희 작가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AI)가 창궐하면서 수백만 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된 2011년의 충격을 3년 후 다시금 되짚기 시작하며, 전국의 살처분 매몰지를 찾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 사진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거운 ‘물음’을 던졌다. 그는 발을 디뎠을 때 물컹했던 매몰지 바닥, 곳곳에 드러난 동물의 뼈, 비닐 아래에서 가까스로 싹을 틔웠다가 하얗게 죽어가기를 반복하는 풀, 끊임없이 곰팡이를 토해내는 땅 등 전국의 매몰지에서 몸소 느낀 ‘낯설고 서늘한 감축과 풍경’을 기록했다.
소규모로 진행된 이 강연은 ‘인간의 삶을 위해 만들어진 죽음의 땅’을 체험하게 했고, 생명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는 땅을 보며 ‘도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라는 아픈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했다. 더불어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마주하며 생명과 인간성, 공감과 치유의 길을 고민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문선희 작가는 현재 ‘살처분 동물 매립지’와 ‘80년 광주 담벼락들의 기억’에 이어 ‘고공농성자의 하늘과 인간애’를 주제로 세 번째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 참고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