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2일 ‘지구의 날 Earth Day’을 기록하다.
-하이킹 히어로즈hiking heroes의 러브레터
하이킹, 숲으로 걷다.
걸었다. 남산 소나무숲으로. 햇빛이 참 밝았다. 그날은 4월 22일 지구의 날이었다. 흰색 티셔츠를 똑같이 맞춰 입은 청소년들과 함께 걸었다. 그들이 입은 티셔츠에는 Hiking Heroes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그 속에 섞여서 계속 앞으로 걸었다. 늦겨울부터 엄마의 병실에서 오랫동안 지내다가 내 몸도 오랜만에 봄이 펼쳐 보이는 따사로운 야외로 나온 날이었다. 바람과 나무 냄새, 흙냄새와 새소리도 좋았다. 그리고 걸으면서 궁금증은 계속되었다. 이 한 무리의 흰옷을 입은 하이킹 히어로즈는 어떤 아이들일까. 그들이 내건 구호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두 발로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는 그 길에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어떤 여정을 체험하기 위해서, 무엇을 염두에 두고 왜, 걷기 시작했을까. 지구의 날, 숲으로의 산책 가이드를 맡아주었던 정원연 작가님(미술)은 우리에게 책을 소개했다. 『침묵의 봄』과 『한국의 새』. 2023년 봄이었고, 새소리 활기찼다. 이전에는 굉장히 소란해 보였던 것들과 그 소란과 분주함의 근거였던 내가 점점 고요해지고 있었다.
달력에는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이 있다.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인데 6월 5일은 ‘환경의 날’이다. 파고드는 질문을 해결하느라고 나는 한 뼘 더 자연 쪽으로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관심 밖의 일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무지했던 내가 그 차이를 알아보고자 지구와 환경과 그리고 거기 사는, 살고자 하는 나를 한 발 떨어져서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 땅을, 이 하늘을, 우리 모두를 살리기 위해’
‘하나뿐인 지구, 하나뿐인 국토, 하나뿐인 생명’
-대한민국의 〈지구의 날〉 슬로건.
1972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 인간 환경회의’에서는 국제사회가 지구환경보전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을 하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렇게 제정된 환경의 날과는 달리 지구의 날은 순수 민간운동에서 출발했다. 한 사람 한 사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작은 실천이라도 하나씩 해보자고 세계적 규모의 시민운동으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부터 지구의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과 나와 너 우리 모두를 위한 하나뿐인 지구. 자유롭게 숨 쉬는 생명을 위하여. 사랑하고자 하면서. 지구에 살고자 하면서. 살고자 한다면!
러브레터: 마음을 다하여!
2023년 지구의 날, ‘지구와사람’에 모여든 사람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Earth, I〉라는 테두리 안에서 소리가 들렸고, 숲에서 보았던 아이들이 보였고, 그들이 만든 곡이 흘러나왔고 영상이 전개되었다. 궁금했던 hiking Heroes(청소년활동환경그룹)의 지구에서의 여정에 나도 있었다. 오프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조금의 온기마저 얼려버린 지난겨울. 반짝이던 별마저 얼어버렸다’ 황폐한 그곳에 싹이 돋아났고 ‘지구의 작은 싹. 아이들이 왔다. 올봄 지구에 내린 아이 hiking heroes. 이 아이들이 지구를 봅니다’라고. 아이들이 느끼고 바라보는 지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구에 내린 하나의 조각들로부터 피어나는 새로운 생명.
하나의 조각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공동체’
‘수많은 아이(I)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지구공동체.
형형색색, 나만의 색이 너만의 색과 어우러진 이 봄’
-〈Earth, I〉 공연 중에서.
수많은 아이(I)들이 혼자서는 이 세계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아이들이 바라보는 것을 나도 보았다. 그들이 만든 영상 속에는 자연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는 4D 안경을 쓴 것처럼 그 공간에서 감각하고 있었다. 다양한 세대가 함께 있었다. 경계를 점차 허물고 더 깊이 섞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지구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배경음악이 지속해서 깔리고 있었는데,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가 알토에서부터 소프라노까지 옥타브를 넘나들고 있었다. 여기에 러브레터를 읽는 아이들의 음색이 섞이면서 겨울은 얼마나 추웠었나 그 혹한의 날씨를 다 잊어가는 듯했다.
‘우선 내 집과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고마워.
전기 절약도 안 하고 매연을 계속 내뿜게 하는 우리 인간들 때문에
많이 힘들지? 내가 정말 미안해서 너를 어떻게든 돕고 싶었어.
계속 지켜봐 줘! 안녕’
-유련이가 지구에게.
‘지구에게.
오늘이 당신의 생일이라고 들었어요! 축하한다고 말하기 위해 이 카드를
보내요. 생일 카드에 안 좋은 일은 쓰지 않을게요.
그냥 “우리가 도와주러 왔어요!”라고만 말할게요.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를 보내주세요. 저희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
-From, 준우.
‘지구에게: 너는 우리의 모든 시작이었다.
너의 고통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게 되었다.
너의 아픔을 보고, 지구의 아이들이 왔다.
1.2도, 더 뜨거워지지 않게 지켜줄게.
곳곳에 암세포처럼 퍼진 너의 오염된 몸을 치료해줄게.
아주 조금만 더 버텨줘. 지구의 아이들은 너의 새로운 시작이 될 거니까.
-수아.
‘친애하는 지구여, 사과하러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무지해서
사과하지 못하지만, 이 말은 꼭 해야 할 말입니다.
지구에 대한 우리의 무모함,무지,명백한 이기심에 대해 죄송합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모든 경이로움,아름다움,필수품,그리고 모든 것 사이의
완벽한 균형을 제공하지만,우리는 눈을 감고 당신의 요구를 외면합니다.
우리 자신의 작은 삶에 너무 갇혀 있습니다. 하지만 친애하는 지구여,
제발 괴로워하지 마세요.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는 서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함께 모여 비극을 멈추기로 결정하기를
희망합니다.우리가 마침내 문제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시고 희망을 가지세요.
-마음을 다하여, 진서윤
마음을 다하여! 이 간곡한 편지들의 문장들이 이 아이들의 정체正體였구나. 본심本心의 모양이었구나. 본디의 형체였구나. 이렇게 나열되는 언어들 속에서 나도 같은 마음으로, 똑같이 흰색 티셔츠를 입었던, 궁금했던 그 아이들을 느끼기 시작했다. hiking heroes. 통증을 내 몸처럼 느끼고 인간의 이기심을 반성하는 아이들.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저 혼자 살겠다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자연에서 배워가는 아이들. 나는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자꾸 숙연해졌다. 그들은 ’하이킹과 자연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의 멤버들이었고 환경보존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방법을 구상하고 실천하는 중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의무이자 당연한 의지여야 한다고 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들이 걷는다. 걷는다. 배낭을 메고 계속해서 걷는다. 숨겨져 있는 쓰레기들도 기필코 샅샅이 뒤져서 찾아내고 양손 가득 커다랗고 무거운 쓰레기봉투를 쥐고 걷는다. 그 걸음은 능동적이라서 더 역동적이었다.
‘지구와사람’의 공간에 모인 그날의 사람들은 긴 대화를 이어갔다. Earth Market에서는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오랜 노력들이 그 귀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누군가에게 닿고 있었다. 나는 작고 예쁜 새 모양의 화분에 심어진 공기정화 식물 ‘이오난사’를 하나 사서 가방에 넣어 데리고 걸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참 맑았다.
그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또박또박 호명해본다. 서지현, 김혜린, 홍수아, 진윤제, 정준우, 조유련, 안소미, 박건우, 박태우, 이신범.
‘앞으로 걸을 그 길에
무난할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이 곁을 계속 내어주기를
아프지 않기를’.
-Hiking heroes, 나의 영웅들에게, 황혜경.
-글_황혜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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