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권 권력과 생명의 관계
고대 그리스에서 인간의 생명은 조에Zoe와 비오스BIOS, 두 가지로 구분됐다. 조에Zoe는 모든 생명체에 공통된 것으로서의 자연생명, 살아 있음이란 단순한 사실을 뜻하고, 비오스BIOS는 개인이나 집단에 특유한 삶의 형태나 방식으로 정치적 삶을 뜻한다. 폴리스(도시국가)는 비오스와 관련된 것인데,
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오이코스=가정의 영역에
국한되었다). 조에를 '벌거벗은 생명'으로 폴리스의 영역에 도입하는 것(벌거벗은 생명의 정치화)은 근대의 결정적 사건이다. 벌거벗은 생명은 발터 벤야민의 '벌거벗은 자연생명'에서 인용된 것으로, 죽음에 노출되었다는 의미로서 포함된다.
서양의 정치는 벌거벗은 생명의 배제적인 포함에 기반해
있다. 근대정치는 배제된 조에가 예외화로서 포섭되는 비식별 영역으로 빠져드는 상황, '예외화의 창출상황'에 놓여 있다.
이 창출능력이 주권이다.
2. 호모 사케르와 생명정치
1) 주권의 논리
주권 권력은 칼 슈미트의 이론에서 끌어온 것으로, 법질서의 예외상태를 선포하고 법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이다. 헌정
중단의 비상사태를 예로 들 수 있고, 비상사태로 법이 배제되는 상황을 초래하는 정치력의 귀속이 주권자의
권력이다.
2) 호모 사케르
고대 로마법에서는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 제의로 바쳐질 수 없는 생명'으로서의 인간을 호모 사케르(신성한
자)로 형상화했다. 여기에서 신성함이란 '저주, 추방'의 양가적
의미이다. 아감벤은 벌거벗은 생명과 호모 사케르의 생명을 동일시한다.
벌거벗은 생명의 창출은 (배제된 생명이 예외화로서 포섭되는 예외상태에서 권력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주권의 근원적 활동이다. "모든 사람을
잠재적 호모 사케르들로 간주하는 자가 바로 주권자이며 또 그를 향해 모든 사람들이 주권자로 행세하는 자가 바로 호모 사케르이다…배제적 포함인 벌거벗은 생명…주권적 속박이 부여하는 근원적인 정치적
공식화라 할 수 있다."(179p)
호모사케르는 단순한 자연생명이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이며 이것이 근원적인 정치적 요소이다. 근대적 인간은 생명 자체가 정치에 의해 문제시되는 동물이다(푸코, '앎에의 의지'). 자본주의의 발전과 승리는 일련의 적절한 기술들을
통해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순종하는 신체'를 산출해낸 새로운
생명권력의 규율적 통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37p)
(홉스, 루소가 말하는) 자연상태란
일종의 예외상태로서 호모 사케르와 벌거벗은 생명이며, 인간과 짐승, 자연과
문명 사이의 비식별영역이자 지속적인 이행의 영역이다.(222p)
3) 근대 생명정치 패러다임으로서의 수용소
전체주의 국가의 근본적인 특징은 '생명의 정치화'다. 그러한
관점에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사이에는 기이한 인접성이 있다.(칼 뢰비트) "생물학적인 생명과 그러한 생명의 욕구가 도처에서 정치적으로 결정적인 사실로 변했다는 오로지 한 가지
이유를 제외하고는, 20세기에 의회민주주의 국가들이 그토록 신속하게 전체주의 국가로 변모하고 또 전체주의
국가들이 오늘날 거의 아무런 단절도 없이 그토록 신속하게 다시 의회민주주의 국가로 되돌아올 수 있는 이유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두 경우 모두 정치가 이미 오래전에 생명정치로 바뀌어 이제 정치의 유일한 진정한 문제는 벌거벗은 생명에
대한 보살핌, 통제, 향유를 보장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정치조직의
형태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일 뿐이라는 맥락에서 이러한 변형이 이루어진 것이었다."(240p)
"근대 국가에는 생명에 대한 결정이 죽음에 대한 결정으로 바뀌고, 또
생명정치가 죽음정치로 전도되는 순간을 표시하는 선이 존재하지만, 오늘날 그러한 선은 더 이상 명료하게
구분된 두 영역을 가르는 고정된 경계선의 형태를 취하지 않는다. 오늘날 그 경계선은 유동적이며 점점
더 광범위한 사회적 삶의 영역들, 즉 주권자가 법률가뿐만 아니라 의사,
과학자, 전문가, 사제와 점점 더 밀접한 공생
관계를 맺어나가는 영역들 속으로 이동하고 있다."(241p)
"'생물학적·과학적 원리들의 정치 질서 속으로의 이해할 수 없는 침투를 대변한다고 간주되는 또 다른 사건들('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제거, 또는
사망 판정 기준에 관한 규칙의 정의를 둘러싼 오늘날 논쟁)의 진정한 의미는, 오직 그것들이 속한 공동의 생명정치적(혹은 죽음정치적) 맥락 속에 다시금 자리매김할 때에야 비로소 분명해진다."(241p)
"이러한 관점에서 수용소는 (오로지 예외상태에 기초하고 있는
한에서) 순수하고, 절대적이며 초월불가능한 생명정치적 공간으로서
근대성의 정치적 공간의 숨겨진 패러다임으로 현시되며, 우리는 그것의 변형과 과장을 식별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241p)
난민은 출생과 연관된 국가시민에게 부여된 권리를 박탈당한
상황으로 벌거벗은 생명이다.
유대인들의 경우 국적을 박탈당한 후 수용소로 보내졌다. 히틀러는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제거로서 만명 정도에게 안락사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호모 사케르에 대한 주권행사를 보여줬다. "근대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안락사는 살해당할 수 있는 생명에 대한 주권적 결정과 국민의 생물학적 신체에 대한 보살핌의 수락 사이의 교차지점에 위치하며, 또한 생명정치가 필연적으로 죽음의 정치로 전도되는 지점을 표시해준다."(273p)
"제3제국은 근대 생명정치의 본질적인 특징 중의 하나인 의학과 정치의 통합이 완성된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표시해준다. 그것은 곧 벌거벗은 생명에 대한 주권적 결정이 엄밀한 정치적
동기들 및 영역들에서 의사와 주권자가 서로의 역할을 맞바꾸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좀 더 모호한 영역으로 이동하였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275p)
국가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과학(특히 유전학)의 발전 사이의 관계(우생학, 인종주의)는 제 3제국의
생명정치가 18세기 경찰 과학에서 물려받은 유산인 '생명에
대한 배려'를 우생학 특유의 관심을 기반으로 절대화시키면서 경찰과 정치, 우생학적 동기와 이데올로기적 동기, 건강에 대한 배려와 적에 대한
투쟁을 동일화했음을 보여준다. 이 관점에서만 유대인 말살의 완전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자연적 유전이 정치적 임무로 변형되는 것보다 나치의 생명정치의 역설,
그리고 그러한 생명정치가 생명 그 자체를 끊임없이 정치적 동원 속에 종속시키는 필연성을 더 잘 설명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20세기의 전체주의는 생명과 정치의 이러한 역동적인 동일성에 기초하고 있으며,
만약 그러한 동일성이 없다면 전체주의는 여전히 이해 불가능할 것이다."(284p)
"근대성의 특징인 생명정치적 지평 하에서는 과거 오로지 주권자만이 진입할 수 있던 이 경계 지역 속으로
의사와 과학자들이 진입해 들어오고 있다."(303p)
"수용소란 예외 상태가 규칙이 되기 시작할 때 열리는 공간이다."(319p)
"우리 시대의 수용소의 탄생은 근대성의 정치적 공간 그 자체를 결정적으로 표시하는 사건으로 등장한다."(329p) 수용소는 영토, 법질서, 출생 외에 새로이 '벌거벗은 생명'을
기입하는 지점을 제4의 불가분 요소로 등장시킨다. "우리는
국가속으로의 생명의 기입에 관한 항상 새롭고 점점 더 착란적인 규범적 정의들을 예견해야 한다. 이제
국가공동체 내부에 확고하게 자리잡은 수용소는 전 세계의 새로운 생명정치의 노모스이다."(332p)
**더 많은 논의들
1. 아감벤의 정치기획 - 아감벤은 도래할 정치가 "국가의 정복이나 통제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국가와 비-국가(인류) 사이의 투쟁이며, 임의의 독특성들과 국가조직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탈구/분리"라고 말한다. 과연 거대자본과 주권분석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2. 국가주권과 생명자본 - 냉동배아. 합성생명 등 계속 자본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 생명주체들을 어떻게 설명하고 포괄할 것인가와 호모 사케르의 방법론 문제
3. 예외상황의 항상적 작용 문제 - 빨갱이, 성소수자 논란등 호모 사케르의 출현이 기존질서로 규정할 수 없는 야생적 삶의 역설적이고 새로운 추동력으로 기능하는 가능성 모색
4. 죽음의 정치
5. 생명의 조건인 생태환경 문제 - 비식별 영역과 관련해서 전적으로 배제되고 벌거벗은 생명으로 포섭된 인간외 생명들, 비식별 영역 확대화의 추세화 야만화의 문제
6. 한국의 역사와 맥락 - 예외상황과 분단, 전쟁, 긴급조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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