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부터 지구와사람은 각 소속 학회가 추천하는 외부 전문가를 초청하여 이야기를 듣고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연속기획 '열린세미나'를 개최한다. 그 두번째 시간으로, 지난 6월 2일에는 지구법학회가 추천한 조효제 교수(이하 '발제자')를 모시고 〈기후-생태위기에 관한 인권사회학자의 생각: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강연을 듣고 참가자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발제자는 2008년 가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통과된 매우 중요한 결의안에서, 기후변화와 신종감염병이 장래 중요한 인권문제가 될 수 있으니 앞으로 인권이사회에서 이를 연구해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다는 일화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 결의안에 자극을 받아 시작된 연구는 2020년 〈탄소사회의 종말〉에 이어 최근작(2022.3.)인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로 이어졌다. 이 시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기후-생태위기를 인권과 사회의 관점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라고 발제자는 언급한다.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에 대한 이어지는 설명을 통해, 발제자는 현재의 위기에 대한 원인으로 인권, 즉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답하고자 하였음을 밝혔다. 아울러 기후-생태위기의 극복에 인권이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이것을 역사.사회적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하였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렇게 볼 때에 인간학대라는 인권 문제와 자연착취라는 환경 문제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연계된 이중지배라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물론 이 점에 대해 인권은 반성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권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한다.
발제자는 기후-생태위기를 소행성 충돌이나 공룡의 멸종과 같은 급격한 사건이라기보다 장기지속적 위기라는 점을 언급하며, 이 점에서 사회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즉, 사회적 위기가 사태의 본질인 만큼, 사회학적 상상력과 사회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없이는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컨대 기후-생태위기로 인한 피해로부터 모두가 같은 정도로 영향을 받지는 않으며, 그런 점에서 '같은 풍랑 속에 있지만 다른 배를 타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사회 격차해소와 자연 착취중단이라는 두 해법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코사이드(ecocide)란 무슨 뜻인지 궁금해진다. 발제자는 국제 스톱에코사이드(Stop Ecocide International)의 개념정의를 인용하여 "어떤 행위가 환경에 극심하고 광범위한 손해 또는 극심하고 장기적인 손해를 끼칠 것이라는 실질적 가능성을 인식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불법적 행위 또는 무분별한 행위를 뜻한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베트남전의 고엽제 살포에서 비롯된 개념이지만 오늘날에는 평시에 기업과 정부의 막개발과 환경파괴까지 포괄하는 것으로까지 의미가 확장되었다.
국제인권보장 체계에서 다른 국제인권규범과는 독특한 성격을 갖는 국제형법에는 제노사이드,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침략범죄를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다섯번째 범죄로서 에코사이드를 규정하자는 것이 에코사이드 국제범죄화 운동이다. 에코사이드 운동의 시초는 폴리 히긴스(1968~2019)에서 시작한다. 스코틀랜드에서 기업 전문 변호사였으나 2000년대 후반 에코사이드 운동에 헌신하게 된다. 2010년에는 에코사이드를 국제범죄로 만들자고 유엔 국제법위원회에 정식으로 제안을 했다. 이는 채택되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에코사이드 범죄화 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물론 발제자는 에코사이드를 법제화한다고 곧바로 기후-생태위기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제도화는 법적.도구적 기능 외에 사회적.표출적 기능도 수행한다. 실정법에 따른 집행이 이루어진다는 도구적 기능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고,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가령 단순 환경 파괴가 아닌 홀로코스트 수준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줄 수 있다. 그러한 사회적.표출적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사고의 커다란 변화이며, 한국에서도 최근 제주 비자림로 관련 운동에서 등장한 '삼나무 학살'이라는 표현이 비슷한 감수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노사이드라는 용어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제노사이드는 물리적 학살 뿐만 아니라 특정 사회집단의 집단으로서의 정체성과 일체성을 말살하고 해체시키는 사회적 죽음으로 봐야 한다는 식으로 의미가 확장하는 중이다. 사실 제노사이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법학자 라파엘 램킨은 그 말을 최근 주장되는 바와 같이 넓은 것으로 이해했다. 이쯤에서 에코사이드와 제노사이드가 얽혀 발생하는 녹색 범죄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에코사이드가 곧 제노사이드라는 운동이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에코상이드와 제노사이드 사이에는 신 식민지배, 산림파괴, 자원착취, 막개발, 인신매매와 같은 중간고리가 놓여 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 지난 50년간 서서히 진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고 있음을 고백한다. 평시 에코사이드와 제노사이드는 인권의 영역에서도 오래전부터 3세대 연대권으로서 문화권과 환경권에서 다루어왔다. 환경과 문화는 이렇게 얽혀있다.
발제자는 같은 맥락으로 분석해볼 수 있는 실제 사례로서 첫째로 아마존에서 환경파괴와 토착민에 대한 사회적 말살이 결합된 것과 둘째로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제노사이드와 더불어 에코사이드로서 접근하려는 것을 들 수 있다.
인류세에 인권 문제가 중요해지고 있다. 발제자는 루이 코즈(Louis Kotze)를 원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핵심은 인간의 행위가 자신에게 돌아와 이차적 영향을 미친다는 재귀적 근대화의 결과(reflective modernization)에 있다. 따라서 기존의 인권이 사회계에서 일어나는 도덕적 문제만 다루어온 것과 달리, 인류세에서 인권은 사회계와 자연계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일어난 각종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를 함께 볼 것이 강조된다. 이에 동조하며 저자는 인권의 문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중심주의 내지 인간예외주의를 탈피하고, 재산권을 제한하고, 인권이 관심을 두지 않고 전제해온 무한 경제성장의 권리를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동물권과 자연의 권리를 보장할 것을 주장한다. 이때 인권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게 발제자의 생각이다. 발제자는 지구와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로서 "지구와 사람이 조화롭게 생존할 수 있는 통합적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에 대해서도 깊은 공감의 뜻을 표했다. 같은 맥락에서 인류세에서 나아간 공생세(Symbiocene)라는 새로운 세계를 이루어 나아가길 희망한다.
발제자는 마지막으로 기후.생태위기 대응의 핵심은 다양성과 공존에 있다고 보았다. 인권 파괴와 환경 파괴는 사회경제시스템을 공통의 기원으로 하여 나타나는 두 가지 지배형태이므로, 두 문제를 연결된 서사구조로 파악할 줄 아는 사회적 상상력이 요청된다고 보았다. 이것이 사회 영역에서는 문화다양성으로 그리고 자연 영역에서는 생물다양성으로 나타나는데, 각각에 대한 극단적 침해가 제노사이드와 에코사이드로 각각 등장한다는 것이 발제자의 분석이다. 이 두 다양성을 함께 옹호하는 것이 인류세의 인권이 된다.
우리는 사회경제시스템에서 일어나는 각종 인간 억압을 막아내고 자연환경 파괴도 막아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소비지상주의에서 심층생태주의로,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경제성장에서 탈성장으로 이행하는 과정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는 쉬운 문제가 아니나 사회학적 상상력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때에는 기존에 추구되어온 사회정의와 함께 생명사랑을 융합해야 한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인류세 시대 확장적으로 이해된 인권이 과연 기존의 인권과 같은 뜻일 수 있는지,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개념정의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에서부터, 인권과 환경의 얽혀있고 그 근본 원인인 사회경제체제를 이끌어가는 기업에 대한 인권적 관심은 여전히 단편적이라는 문제, 인권과 책무성, 그리고 제노사이드가 규범적 틀에 갖히는 것에 대한 경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