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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법학] 지구법의 국제적 흐름
  • 2024-06-21
  • 169

※ 2015년 지구와사람 창립기념 컨퍼런스 〈침묵하는 지구를 위하여〉 3부 “지구법, 시작을 말하다”에서 정혜진 변호사(현 지구법센터장)가 발제한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지구법의 국제적 흐름

 

  • - 정혜진 변호사(현 지구법센터장)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환경법을 공부했지만 ‘지구법학(Earth Jurisprudence)’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은 지구법학회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왜 지구법을 공부해야 하는가. 처음에는 왜 지구법에 이끌렸는지 개인적으로도 그 이유를 밝히기 어려웠지만, 점점 공부를 해나가고 또 여태껏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며 왜 지구법을 공부해야만 하는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현실적으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현학적인 학문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구법은 지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유용한 해결책이라는 것이 공부를 하며 내린 결론이자 입장이다. 게다가 이러한 움직임은 지금 이곳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이른바 선각자들을 중심으로 한 지구법 논의가 이미 어느 곳에서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그 논의를 바탕으로 현실화한 법도 있다. 소수의 논의가 이뤄낸 성과다. 지금부터 그 사례를 함께 살펴보려 한다.

 

인간 중심 법 체계에서 자연 중심 법 체계로

 

지구법학이라고 번역한 ‘Earth Jurisprudence’라는 말이 언제부터 쓰였을까? 2001년에 토마스 베리(Thomas Berry)가 이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토마스 베리는 법학자나 법조인은 아니었지만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가톨릭 사제였다. 위키피디아에서는 그를 문화역사학자 겸 생태신학자(cultural historian and ecotheologian)라고 소개한다. 2001년,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국제적으로 많은 활동을 벌이는 비영리 환경 운동 재단 가이아재단(Gaia Foundation)이 첫 번째 ‘지구법 모임(Earth Jurisprudence Meeting)’을 주최했다. 이 역사적인 자리에서 토마스 베리는 지구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처음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모임이 열린 장소는 ‘Airlie 센터’. 이후 토마스 베리가 지구법의 원리에 대해 설명한 강연 내용은 이러한 연유로 ‘Airlie Principles’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논리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지금 지구가 처한 여러 가지 환경적 위기 상황으로 볼 때 지금까지 우리가 유지한 인간 중심의 법 체계로는 이 거대한 난관을 헤쳐갈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는 것. 인간 중심의 기존 법 체계는 오직 인간의 이익만을 향상시킬 뿐 지구의 다른 종(種)에게는 아무런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만약, 모든 종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개념에 기초한 법 체계가 있다면 어떨까. 토마스 베리는 오랜 고민 끝에 새로운 관점의 생각을 내놓았다. 구 구성원이라면 무엇이든 그 존재로서 권리를 갖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껏 유지해온 인간 중심 법체계를 지구 중심 법체계로 바꾸어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지구법학’이라는 용어는 이 과정에서 생겨났다.

 

토마스 베리가 2001년 “지구법학”을 이야기했다. (photo by NCRonline)

 

이후, 관련 연구가 확산됐다. 그중 가장 중요한 연구가 2002년에 발간된 〈야생의 법(Wild Law)〉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2001년 그날 토마스 베리의 강연을 들었던 남아공의 변호사이자 환경 전문가인 코막 컬리넌(Cormac Cullinan)이 지구법학 정신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연구한 책이다. 그 이후 ‘Wild Law’라는 용어도 많이 쓰이고 있다. 2004년에 영국에서 처음으로 Wild Law 워크숍을 진행한 이후에 매년 Wild Law 워크숍이 열린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대학에서는 지구법 강좌를 개설했고, 지구법 센터라는 것도 세웠다. 호주에서는 2009년에 처음으로 Wild Law 컨퍼런스를 열었고 이후 매년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그리고 2015년 11월 7일, 서울에서도 포럼 지구와사람이 창립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기념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그리고 이 자리,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구법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 역시 아주 역사적인 자리로 기록될 것이다.

 

2002년 코막 컬리건의 〈야생의 법(Wild Law)〉을 발간되었다. 
국내에는 2016년 지구법학회 회장 박태현 교수가 번역 출간했다.

 

지구법학에 대해 계속 공부해 나가는 중이고 앞으로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런 것이다. 지금의 법 체계는 인간 중심적인데, 그것을 지구 중심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법 철학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아니라 지구의 한 구성원일 뿐이라는 인식의 변환이다. 지금의 법 체계에서는 인간 외의 것들을 ‘구성원’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이나, 동물, 식물 역시 지구라는 땅 위에 존재하는 지구의 구성원이다. 그렇다면 이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인간계에 민법, 형법, 상법처럼 지구법이라는 ‘분야’가 따로 있다는 것은 아니다. 지구법학은 법 체계를 만드는 기본 가치관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 외 다른 지구의 구성원에게 권리를 인정하는 법 체계 형성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 믿기 어렵겠지만, 실제로 지구법학이라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에콰도르, 자연의 권리를 명시하다

 

첫 번째 사례는 에콰도르 헌법이다. 에콰도르 헌법은 2008년에 개정되었는데,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법적으로 집행 가능한 자연의 권리를 명시했다. 에콰도르 헌법 편제는 제 1편 국가의 구성 요소, 제 2편 권리 등 제 9편까지 있다. 그런데 제 2편 권리 중, 제 7장이 ‘자연의 권리’로 명시되어 있으며 제 7장 71조에서 73조까지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조문이 있다.

 

Article 71. Nature, or Pacha Mama, where life is reproduced and occurs, has the right to integral respect for its existence and for the maintenance and regeneration of its life cycles, structure, functions and evolutionary processes.
All persons, communities, peoples and nations can call upon public authorities to enforce the rights of nature. To enforce and interpret these rights, the principles set forth in the Constitution shall be observed, as appropriate.
The State shall give incentives to natural persons and legal entities and to communities to protect nature and to promote respect for all the elements comprising an ecosystem.

 

Article 72. Nature has the right to be restored. This restoration shall be apart from the obligation of the State and natural persons or legal entities to compensate individuals and communities that depend on affected natural systems.
In those cases of severe or permanent environmental impact, including those caused by the exploitation of nonrenewable natural resources, the State shall establish the most effective mechanisms to achieve the restoration and shall adopt adequate measures to eliminate or mitigate harmful environmental consequences.

 

Article 73. The State shall apply preventive and restrictive measures on activities that might lead to the extinction of species, the destruction of ecosystems and the permanent alteration of natural cycles.
The introduction of organisms and organic and inorganic material that might definitively alter the nation’s genetic assets is forbidden.


첫 번째 조문에서부터 이들은 자연이 어떠한 구체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한다. 우리 헌법에는 제2장에서 ‘국민의 권리와 의무’라고 해서 기본권을 명시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다. 즉 주어가 ‘국민’이다. 국민이라면 이러한 권리가 있다는 조문이다. 그런데 에콰도르 헌법은 자연에게 어떤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71조에서는 자연이 존재하고, 유지하고, 재생산을 할 수 있도록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명시했고, 72조에서는 자연이 회복될 권리를, 73조에서는 자연이 이와 같은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국가는 종의 멸종이라든지, 생태계 파괴와 같은 것을 막아야 할 책임을 지닌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헌법 개정은 에콰도르 시민 단체와 영미권의 연구가들이 같이 연구하고 협력해서 낸 성과다
그런데 지구법학회에서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지구법에 관한 연구는 영미권에서 가장 많이 이루어졌는데 어떻게 남미 국가에서 자연의 권리를 처음으로 명시한 헌법이 제정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자세한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아직 원시적인 자연이 많이 남아 있는 남미권이나 아프리카는 사람과 자연이 서로 교제할 수 있는 경험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때문에 이들은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뿐 아니라, 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신념을 법에 투영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가치관이 법 제정의 든든한 배경이 된 것이다.

 

  2008. 10. 20, 에콰도르 헌법은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법적으로 집행가능한 자연의 권리를 명시했다.

 

지구의 권리를 위한 다양한 움직임

 

다음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유엔 차원에서의 노력이다. 아직까지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한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의미를 가진다. 먼저, ‘어머니 지구(Mother Earth) 권리 선언’이라는 게 있었다. 2010년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Evo Morales Ayma)가 제안한 것인데, 말 그대로 ‘어머니 지구’에 대해 권리를 부여하는 권리 헌장이다. 지금까지 대개의 노력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는 것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 지구 권리 선언’은 지구에 권리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아직 유엔 차원에서 정식 승인 된 것은 아니지만, 이를 정식 승인 협약으로 만들기 위해 시민단체 Rights of Mother Earth가 계속해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0. 4. 20. Universal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other Earth

 

세 번째 예는 재판소, 즉 법원에 관한 것이다. 어떤 권리를 보호하는 법이 집행될 수 있으려면 그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재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자연이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자연의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 자연을 대신해 누군가가 말을 해 준다면 자연도 재판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국제 자연권리재판소(International Rights of Nature Tribunal)’라는 재판소가 있다. 이것은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다거나 유엔에서 승인한 재판소가 아니라, 일종의 운동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행동이다. 이 재판소는 ‘자연의 권리를 위한 국제연맹(Global Alliance for the Rights of Nature)’이라는 단체가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세 번의 재판이 열렸다. 2014년 1월에 에콰도르에서 첫 재판이 열렸고, 2014년 12월에는 페루에서, 그리고 2015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정 행사 일정 중 하나로 진행됐다. 이 재판에 회부된 것들은 공통적으로 자연의 권리가 침해된 구체적 사례였으며, 재판관들이 이를 판결하며 대책을 마련하는 등 자연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재판을 진행했다.

 

2014년 1월 17일 Inaugural International Rights of Nature TribunalQuito, Ecuador
에콰도르 키토에서 열린 최초의 자연권 국제 재판소. 반다나 시바 박사가 의장을 맡은 국제 판사 패널

 

끝으로 소개할 사례는 영국의 폴리 히긴스(Polly Higgins)라는 변호사의 이야기다. 그는 ‘에코사이드(Ecocide)’, 즉 생태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를 국제법으로 인류에 대한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제노사이드(Genocide)는 인종이나 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 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여 절멸시키는 것으로, 이것은 이미 국제법으로 반인륜적 범죄로 규정되어 있다. 폴리 히긴스는 이 제노사이드에 빗대어 에코사이드를 설명한다. 어느 한 곳에서 생태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는 그 국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생태는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전 세계가 영향을 받게 되고, 파괴된 생태로 인해 기아, 전쟁 등이 일어나기도 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히긴스는 에코사이드가 제노사이드만큼 중요한 인류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국제법으로 제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펼친 테드 스피치에 이 같은 내용이 잘 소개되어 있다. 2011년에는 히긴스를 중심으로 몇몇 변호사들이 모여 영국의 잉글랜드 및 웨일즈 대법원에서 모의 재판을 진행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출신 변호사이자 환경운동가 폴리 히긴스
2010년 4월 유엔국제법위원에 ‘생태학살 법률 초안(a draft law of ecocide)’을 제출했고, "Stop Ecocide!)”라는 국제 캠페인을 벌였다.
 

 

위에 소개한 사례 외에도 더 많은 사례들이 있다. 가이아재단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되는 ‘지구법 선례Earth Law Predecents’를 참고하면 더욱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중에는 에콰도르 헌법처럼 이미 눈에 보이는 움직임도 있고, 아직까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세계를 변화시킬 씨앗이 되는 움직임들도 있다. 우리 역시 이 변화의 주역으로 동참하길 기대한다.

 

 

*컨퍼런스 영상 05:16-19:26 (약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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