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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리핑] 유럽인권재판소의 기후 변화 인권 침해 판결 (법률신문 2024/05/09)
  •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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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유럽인권재판소(European Court of Justice)는 2024년 4월 9일 스위스가 기후변화의 악영향으로부터 국민의 생명, 신체를 보호할 국가의 적극적 의무(positive obligation)에 위반하여 청구인의 유럽인권협약(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이하 ‘인권협약’)상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판결하였다(이하 ‘유럽인권재판소 탄소중립판결’). 유럽인권재판소 탄소중립판결은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사 소송 중 2021년 3월 24일 선고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인용 판결 이후 가장 주목할 만한 판결이다. 특히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은 인정하지 않은 채,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 목표를 정하지 않은 독일연방기후보호법 조항이 원고들의 異時的(=미래에 누릴) 자유를 침해한다는 취지였던 반면, 유럽인권재판소 탄소중립판결은 국가의 인권협약상 권리 보호의무 위반을 정면으로 인정하였다.

 

헌법재판소도 유사한 사건(2021헌마1264 등. 이하 ‘탄소중립 헌법소원’)을 심리 중이고 최근 제1차 변론기일을 열었는데, 국가의 환경권 보호의무 위반도 중요한 쟁점 중 하나이다. 이 글은 유럽인권재판소 탄소중립판결의 논증구조의 핵심을 개관한다.

 

 

2. 국가의 인권협약상 의무의 근거 및 의무 위반을 심사하는 심사척도

 

제35조에 환경권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우리 헌법과 달리, 인권협약에는 환경권에 관한 규정이 없다. 그러나 유럽인권재판소는 사생활, 가족생활, 주거, 통신을 존중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인권협약 제8조를 근거로 하여 소음공해 등 각종의 환경상의 위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여야 할 체약국(Contracting States, 이는 유럽인권협약의 체결 당사국을 의미하는데 이하에서는 편의상 ‘국가’라 칭한다)의 적극적 의무를 인정하는 법리를 발전시켜 왔다. 유럽인권재판소 탄소중립판결도 이러한 전통적인 법리에 기초하고 있다.

 

즉 국가는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입법적, 행정적 제도적 장치들(framework)을 마련할 적극적 의무가 있고, 그 의무의 정도는 국가가 방지해야 하는 잠재적 위험의 수준에 상응한다[538 (a), 이하 유럽인권재판소 탄소중립판결을 직접 인용하는 경우, 단락번호와 세부목차를 [ ] 안에 표기하기로 한다].

 

또한 인권협약은 가상적인(illusory) 권리가 아니라 효과적인(effective) 권리를 보호하므로, 국가는 의무 이행을 위한 조치들을 적시에 효과적으로(in a timely and effective manner) 집행할 의무가 있다[538 (b)]. 요컨대, 협약 제8조에서 도출되는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의 내용은 (1) ‘협약상 권리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입법/행정 조치를 마련할 의무’와 (2) ‘마련한 조치를 적시에 효과적으로 집행할 의무’의 둘로 구성된다.

 

국가는 기후변화가 미래에 끼칠 악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입법적/행정적 조치(regulations and measures)를 마련하고, 이를 실제로 효과적으로 집행할 의무가 있는데[545], 이는 대기 중 온실가스 축적량 증가를 방지하고, 인권 특히 인권협약 제8조의 사생활, 가족생활, 주거에 관한 권리에 대한 심각하고 비가역적인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지구 평균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다[546].

 

따라서 국가는 원칙적으로 향후 30년 이내에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조치를 취하여야 하고, 또한 그 조치는 효과적이어야 하므로 국가는 이를 적시에 그리고 적절하고도 지속적으로 집행해야 한다(act in good time, in appropriate and consistent manner)[548].

 

나아가 이러한 조치가 진정으로 실현가능하고(genuinely feasible) 미래세대에 대해 비례성을 상실한 부담을(disproportionate burden) 지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뿐 아니라 탄소중립에 이를 때까지 달성하여야 하는 적절한 중간 감축 목표치를 정해야 한다. 그러한 조치는 구속력 있어야 하고 적절하게 집행되어야만 하며, 일반적 적응조치와 부문별 적응조치의 근간이 되는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치와 시간계획이(targets and timelines) 그 핵심적인 부분이 되어야만 한다[549].

 

 

3. 의무 위반 여부를 인정하는 심사강도

 

합법/불법의 경계를 가르는 심사척도를 정하고 이를 심판대상에 적용하는 것으로 곧바로 합법이나 불법 둘 중의 하나의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 있는 사건에서는 법관은 판단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 심사강도는 이러한 법관의 판단불능 상태를 해소하고 합법 혹은 불법의 어느 한 결론에 이를 수 있게 하는 논증도구이다. 이러한 판단불능 상태는 사실적 불확실성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있고 규범적 불확실성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적 불확실성의 경우 증명의 정도 법리(예컨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는 증명)를 통해 해소된다. 행정소송, 헌법소송과 같이 국가 작용의 위법/위헌 여부를 다투는 소송의 경우 사실적 불확실성보다는 규범적 불확실성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권력분립원칙에서 비롯되는 다른 국가기관과 사법부 사이의 구조적인 관계가 심사강도 결정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행정소송에서의 행정의 1차적 판단 존중(deference)이나 헌법소송에서의 입법재량 존중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이치는 국제재판소인 유럽인권재판소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회원국에게 평가 여지(margin of appreciation)를 얼마나 부여할 것인지가 심사강도 법리로 발달되어 왔고, 많은 사건에서 핵심적인 쟁점이 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종래 환경 문제에 관한 사건에서는 국가에 높은 수준의 평가 여지를 인정해 왔는데, 이번 판결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이원화하였다. (1) 국가가 기후변화 및 그 악영향에 맞서 싸울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하고(commitment to the necessity of combating climate change and its adverse effect) 이를 이루어내기 위해 필요한 목표(aims and objectives)를 설정하는 영역과 (2)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마련한 수단들을 선택하는 영역을 구별하여 (1)의 경우 평가 여지가 줄어들고, (2)의 경우에는 넓은 평가 여지가 부여된다[543, 549].

 

 

4. 구체적인 판단

 

스위스의 이산화탄소법은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0%의 감축을 목표로 정하였는데 이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 억제 목표가 2~2.4℃인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런데 스위스는 그마저도 달성하지 못한 채 2020년까지 11% 감축에 그쳤다[558-559]. 이어 2020년부터 2030년까지 감축계획을 내용으로 하는 국민투표가 2021년에 부결되면서 2020년은 감축목표량이 정해지지 않은 채 지나갔다. 2021년에 법개정이 되었으나 2024년 이후 목표치는 설정하지 않았다. 이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시간계획 및 잔여탄소예산을 구체화하는 일반적인 조치들 혹은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수량화(quantification)를 전제로 한 그와 동등한 조치를 채택할 국가의 의무에 어긋난다[561, 550(a)].

 

위와 같은 2020년과 2024년 이후의 공백들(lacunae)은 스위스가 인권협약 제8조에 보장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목표들을 설정할 의무를 위반하였음을 보여준다[562]. 스위스는 2022년에 기후변화법을 제정하였으나, 이 법은 2031년 이후 기간만을 규율하므로, 2025년부터 2030년까지의 기간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는다.

 

또한 기후변화법은 구체적인 목표치만 규정하고 달성 방안은 연방기후변화위원회가 적절한 시기에 의회에 제안하도록 정한다. 기후변화의 심각한 급박성(pressing urgency)과 충분한 규제 조치 부재라는 스위스의 상황을 감안하면, 기후변화법은 기후변화가 생명과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국민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조치를 마련하고 이를 실제로 효과적으로 집행할 국가의 의무 이행으로 평가되기 어렵다[564-567].

 

 

5. 시사점

 

헌법재판소는 선거운동용 확성장치의 대수만 규제하고 출력량은 규제하지 않은 공직선거법 조항이 정온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결정하였다(2018헌마730). 선거운동 소음은 선거운동기간에 특정 장소에 국한하여 발생하는 것에 불과하고 그로 인한 건강상의 위해도 적은 반면 기후 불안정은 모든 국민과 미래세대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므로, 탄소중립 헌법소원에 대해서는 선거운동 소음 결정보다 환경권보호의무 위반의 심사강도를 강화하는 것이 논리적이다. 유럽인권재판소 탄소중립판결은 기본권보호의무 위반의 심사강도를 이원화하는 법리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이재홍 교수(이화여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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