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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언어로 기후위기에 맞서기: 기후소송으로 본 기후위기 시대의 법(서울대저널 2023/12/18)
  • 202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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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위협은 나날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례 없는 폭우, 폭염, 폭설, 가뭄 등의 이상기후 현상을 마주한 사람들의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2023년 공개한 6차 종합 보고서를 통해 ‘긴급하고 효과적인 대응이 없다면 기후변화는 점점 더 생태계, 생물 다양성, 현재와 미래 세대의 생계와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며 즉각적인 온실가스 감축이 시급한 과제임을 강조했다. 시민사회 역시 정부와 기업에 변화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법의 언어로 기후위기에 맞서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소송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및 기업의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시대에 법과 사법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기후소송을 통해 살펴봤다.

 

기후소송이 뭐야?

 

기후소송은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방지하거나 이미 발생한 피해에 대해 책임을 묻는 소송을 의미한다. 크게 정부나 국가기관을 상대로 하는 공법소송과 기업을 상대로 하는 사법소송으로 구분된다. 공법소송에선 정부의 불충분한 기후변화 대응이나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의 인허가 및 정부 지원 문제 등이 주요 주제로 다뤄진다. 사법소송의 경우, 기업의 화석연료 사용이 기후변화에 미친 영향에 대한 책임이나 그린워싱 등이 화두다.

 

2015년 진행된 네덜란드 지방법원의 ‘우르헨다’ 판결은 기후소송이 전 세계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네덜란드 시민단체 우르헨다는 온실가스 배출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네덜란드의 온실가스 배출 수준이 정부의 주의의무에 반한다고 주장하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우르헨다 판결은 네덜란드 지방법원이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인정하고 감축 목표 상향을 명령한 판결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2023년 발표한 기후소송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제기된 기후소송은 전 세계적으로 2,180건에 달한다. 이 중 1,522건은 미국에서 제기된 사건으로 지역적 편중이 존재하지만, 독일(38건), 브라질(30건), 인도네시아(12건) 등 다양한 국가에서 기후소송이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에서도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이 정부의 부족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것을 시작으로, 4건의 유사한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그 밖에도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가스전 개발사업 투자계약 체결금지 가처분 신청 등 다양한 형태의 기후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송이 시민단체나 개인이 기후위기와 관련된 정부나 기업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영국 런던정경대 산하 그랜섬 기후변화환경연구소는 올해 7월 발간한 기후소송 관련 보고서를 통해 ‘50% 이상의 기후소송이 기후변화 대응에 유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사법적 결과를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기후소송은 소송의 대상이 된 정부나 기업의 정책을 변화시키거나 피해보상을 받는 것 외에,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고 정부와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효과도 있다.

 

기후소송 파헤치기

 

기후소송이 자칫 기후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선언적 행위로만 비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유엔환경계획은 ‘기후소송 판례가 축적되면서 점점 더 명백한 법적 분야를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기후소송이 법리적 정당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의미다. 기후소송의 원고들은 어떤 법적 논리로 변화를 촉구하고 있을까.

 

정부의 환경 정책을 대상으로 기후소송을 진행하는 경우, 원고 측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이 부족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정부에게는 기후변화로 초래될 중대한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를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해야 하지만, 정부가 기본권 보호를 위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정부 대상 소송에서 과소 보호 금지 원칙을 적용해 국가가 기본권 보호 의무를 적절한 수준으로 이행하고 있는지를 판단해왔다. 이는 국민의 법익 보호를 위해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했는지를 위헌성 판단의 준거로 삼는다는 의미다. 어떤 수단을 활용해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입법과 행정의 영역이지만, 헌법적 관점에서 보호조치의 최소 수준을 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헌법재판소는 기존 판결에서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국가가 아무런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거나 취한 조치가 법익을 보호하기에 매우 불충분한 것임이 명백한 경우’에 한해 국가의 보호 의무 위반으로 판결했다. 국내 기후 헌법소원 판결에도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입장이 적용될지가 핵심이다.

 

청소년기후행동이 제기한 청소년 기후헌법소원의 경우, 2020년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시행령에 규정돼 있던 소극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문제 삼았다. 당시 정부는 해당 시행령에서 2030년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의 배출량에서 약 24% 줄어든 5.36억 톤으로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정부가 지구 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억제한다는 파리 협정상의 최소 목표를 달성하기에 불충분한 수준의 목표 감축량을 설정했고, 이는 생명권과 환경권에 대한 과소 보호 금지 원칙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적 합의를 통해 도출한 최소 목표는 기후파국을 맞지 않을 수 있는 마지막 한계선임에도, 이마저 지키지 않아 최소한의 보호조치도 없었다는 것이다. 원고 측은 정부가 규정한 감축 목표의 미흡함을 지적하며 2019년 유엔환경계획이 ‘모든 국가가 현재보다 적어도 27% 이상 목표배출량을 낮춰야 온실가스 배출량 최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파리 협정이나 유럽 인권협약과 같은 국제적 합의 내용과 기후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보호조치의 최소 수준을 도출한 네덜란드 우르헨다 판결과 유사한 논리다.

 

국가 정책을 대상으로 하는 기후소송은 기후변화로 인한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한다는 측면뿐 아니라 세대 간의 평등을 조정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기후변화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진행되도록 두지 않기 위해 앞으로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양인 탄소 예산이 정해져 있으므로, 현세대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못하면 미래 세대가 온실가스 감축의 부담을 모두 떠맡게 되는 부정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21년 독일의 기후변화대응법 일부 위헌 결정의 주요 근거로 현재의 노력이 불충분하다면 미래에 급격하고 과중한 온실가스 감축이 필요할 것이며, 이에 청소년들로 구성된 청구인들이 장래에 누려야 할 행동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된다는 점을 들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2022년, 첫 번째 헌법소원 이후 제정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제기한 추가 헌법소원에서 유사한 논리로 해당 법률 조항의 위헌성을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올해 헌법재판소에 ‘미래세대에게 불균등하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 없는 차별적 취급’이라는 의견을 전달해 국내 기후변화 헌법소원 청구인들의 주장에 힘을 보탰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송의 주요 형태는 기업에게 환경에 미친 악영향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소송의 원고들은 기업의 활동을 통해 배출된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그 피해에 대응하는 데 드는 비용을 부담할 책임이 기업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페루의 한 농부는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호가 범람해 농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독일 에너지 산업 2위 규모의 에너지 기업 RWE에 범람 예방에 드는 비용의 0.47%를 부담할 것을 요구했다. 0.47%라는 수치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규모가 큰 배출원에 의한 배출량에서 RWE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기후변화에 작용한 정도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2016년 독일 지방법원은 해당 기업의 활동과 빙하호 범람 사이의 연관성을 법적으로 입증할 수 없다며 소송 각하를 결정했지만, 고등법원이 하급심의 결정을 뒤집었다. 현재는 추가 증거 수집 단계로 아직 다음 판결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법원이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일 경우 기후변화로 피해를 입은 개인들이 거대 기업에게 책임을 묻는 소송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법원이 민법 차원에서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인정한 사례도 있다. 네덜란드의 환경단체 지구의 벗은, 기후변화 방지를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석유 기업 로얄더치셸이 민법상의 주의의무를 위반해 국민의 생명권, 자유권 등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네덜란드 민법은 적절한 사회적 행위에 모순되는 행위를 하지 않을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 온실가스 감축 노력의 부족이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은 2022년 원고의 주장을 인용해 로얄더치셸에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감축할 것을 명령했다. 유엔 기업 인권 이행 지침 등 기업의 책임에 관한 국제 규범에 비춰 기후변화의 위험으로부터 주민을 보호하는 것이 적절한 사회적 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로얄더치셸이 항소를 제기함에 따라 아직 확정된 판결은 아니지만, 법원이 기업에게 감축 의무를 부과한 첫 사례인 만큼 기후문제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둘러싸고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후위기의 시대, 사법의 자리는

 

기후소송은 점점 더 많은 국가에서 제기되고 있고, 다루는 주제의 범위도 확장되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으로서 그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사람들은 왜 사법적 수단에 손을 뻗고 있을까. 기후위기 시대에 사법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사법적 수단이 입법이나 행정 관점에서의 접근과 다른 이점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이재희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은 기후변화 헌법소송에 관한 연구 「기후변화에 대한 사법적 대응의 가능성」에서 행정이나 입법 분야가 갖는 기후변화 대응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 책임연구관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업체에 대한 규제가 국가에 경제적 부담을 야기할 수 있어’ 정치의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4~5년의 선거 주기에 맞춰 조직되는 입법부와 행정부 특성상 장기적인 고려가 필요한 기후변화 문제에 충실히 대응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더욱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될 아동·청소년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가 현재의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단이 제한적이라는 점 역시 기후문제 대응에 있어 입법과 행정 영역의 한계로 지적된다. 이재희 책임연구관은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정치에 의한 기후변화 대응이 진척되지 못할 때 사법의 작용이 요청될 수 있다’며 ‘멈춰 선 정치 작용을 자극하고 견인할 사법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기업 차원에서도 기후소송은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녹색전환연구소의 지현영 변호사는 “기업들이 위험 관리 측면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며 “(환경에 미친 악영향으로 인한) 기업 이미지 훼손에 비해 기후소송은 기업 입장에서 더 실질적인 위험 요인으로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법적 수단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한다. 지현영 변호사는 소송의 경우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과도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지적했다. 네덜란드 우르헨다 판결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까지 7년이 소요됐으며, 국내 첫 기후변화 헌법소원인 청소년기후행동의 기후헌법소원도 제기된 지 4년이 다 돼가고 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즉각적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수년간 판결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기후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사회 전반의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 강원대 박태현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사법 판단은 한 사회에서 가장 권위 있고 구속력 있는 견해이므로 사회의 변화를 촉진하는 힘이 될 수 있으나, 그 자체만으로는 변화를 불러올 수 없다”며 입법과 행정이 함께 제 역할을 해야 기후위기 시대에 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변화에 발맞춰 나아가는 법

 

기후변화 대응이 시급하다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법도 다방면으로 변화하고 있다. 2022년 7월 유엔 총회는 깨끗하고 건강하며 지속 가능한 환경에 대한 접근권을 보편적인 인권으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안토니오 구헤테스 유엔 사무총장은 관련 성명에서 ‘이번 결의안을 바탕으로 각 국가가 환경문제에 대한 의무를 더욱 충실히 이행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OECD는 올해 10년 만에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면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기업 경영의 지속 가능성이 기업의 중요 정보임을 명시했다. 기후변화 문제의 중대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의 변화다.

 

국제규범은 국가나 기업에 대해 강제력을 지니진 않지만, 관련된 법과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기반이 되거나 사법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에 국제규범의 변화는 국내법 체계에도 분명히 반영된다. 일례로 브라질 대법원은 ‘파리 협정은 초국가적 지위를 지니는 인권조약이기 때문에 파리 협정에 위배되는 국내법이 무효화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기업의 의무와 책임을 법에 반영하려는 시도로는 기후실사 의무화가 떠오르고 있다. 기후실사는 기업이 자신의 공급망 전체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을 측정하고 적절한 감축 계획을 수립, 이행하는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실사 의무화는 유럽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올해 6월 기후실사 의무를 포함하는 공급망 실사법이 유럽연합의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프랑스나 독일 등 일부 개별 국가에선 이미 시행 중이다. 공급망 실사법이 시행되고 있는 국가의 일정 규모 이상 기업들은 실사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시 행정적 제재를 받게 된다. 공급망 실사법을 근거로 민사상 책임을 묻는 것도 가능하다.

 

기후실사 의무화의 효과는 해당 기업이나 국가 내로 한정되지 않는다. 협력업체나 물류, 유통 부문에서 발생시키는 온실가스도 실사 대상이기 때문이다. 지현영 변호사는 “실사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협력사를 선호하게 된다”며 이로 인해 규모가 작아 실사 의무가 없는 기업이나 기후실사 의무가 법제화되지 않은 국가의 기업도 유관 기업이 법적으로 실사 의무를 다해야 한다면 온실가스 감축을 시도하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탄소중립기본법의 경우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이행을 공개하는 내용이 담기긴 했지만, 이를 기업의 자율에 맡기고 있어 기후실사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지현영 변호사는 “자율적 규제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규범력을 가지는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지 변호사는 “국내 기업들이나 국민이 온실가스 감축이 기업의 의무라고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관련 논의의 확산과 인식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 법이 인간과 자연, 지구를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지구법 논의도 진행 중이다. 지구법은 인간 중심주의적 법체계를 탈피해 비인간 존재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지구 공동체의 유지와 증진을 우선한다. 지구법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태현 교수는 “인간 종이 다른 자연의 우위에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생태위기를 불러왔다”며 “지구법이 해독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법이 환경문제를 다룰 때 지구법적 관점의 도입은 자연에게 법인격을 부여해 권리 주체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법인격이란 법적 자유와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 어색하게 들릴 수 있지만, 우리 법은 이미 인간 외에도 법인을 법인격의 주체로 인정하고 있어 기업이나 단체, 재산 등은 인간이 아님에도 법적으로 일부 권리를 가진다.

 

하지만 현행법은 자연을 권리의 주체로 여기지 않는다. 현행법에서 자연은 인간이 보호할 의무를 가지는 보호의 대상으로만 여겨진다. 박태현 교수는 이러한 관점의 한계로 “보호 의무가 인간의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보호의 내용과 정도 역시 인간이 자의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을 꼽았다. 이처럼 자연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행정부의 정치 성향이나 국가의 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관련 정책이 흔들릴 수도 있다. 반면 지구법적 관점에서는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자연에 권리가 있어서라고 본다. 박 교수는 “자연의 권리는 법이 함부로 폐기하거나 제한할 수 없고, 권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인간이 보호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연에 법인격을 부여하려는 시도는 전 세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에콰도르는 안데스 원주민 사상을 바탕으로 자연이 그 구조의 유지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자연환경이 훼손되면 원상회복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에콰도르에서는 이러한 헌법을 기반으로 한 법원의 판결을 통해 반환경적인 개발 사업들이 중단되기도 했다. 스페인에서는 한 석호의 환경 훼손이 심각해지자 작년 해당 석호에 유지와 보존, 회복에 관한 권리를 부여하는 법이 제정됐다. 국내에서도 최근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에게 생태법인 제도를 통해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자 하는 논의가 진행됐다. 제주도는 늦어도 2025년까지는 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지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사회가 있는 곳에 법이 있다”는 격언이 말하듯 법은 사회를 바탕으로 구성되며, 사회의 지속을 위해 필수적이다. 인간은 이미 모든 분야에서 기후위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로 들어섰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인식이 법에도 반영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위험을 막아낼 수 있도록 힘 있는 법의 언어가 필요한 때다.

 

서울대저널 2023/12/18 

“법의 언어로 기후위기에 맞서기:  기후소송으로 본 기후위기 시대의 법” - 최윤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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