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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법학회를 말하다 - 정혜진
  • 202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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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대를 지향하는 지식공동체’ 지구와사람은 생태대연구회, 지구법학회, 기후와문화연구회, 바이오크라시연구회 등 4개의 학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중 지구와사람의 간판 학술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지구법학회를 소개한다. 왜 ‘간판’ 학술모임이냐고? 좋은 질문이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니,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소개를 해보겠다.   


지구법학회의 정체성과 공부 방식
일단 학회명부터. 군더더기 없이 간명하다. ‘지구법학회’. 국내에 수많은 학회가 있지만 ‘지구법’을 내세운 학회는 아마 우리 지구법학회 단 하나 뿐일 것이다(이 글을 쓰면서 포털창에 검색해보니 그런 것 같다). 유일무이하다는 건 정체성은 확실하지만 남들에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구법이 뭐지? 법은 대개 한 국가 내에서 적용되는 거고, 국제법이라고 해도 각 국가 간의 협조와 조율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지구를 규율하는 법을 도대체 누가 감히 만들 수 있다는 거야? 지구법학회를 처음 시작할 때 필자는 그런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지구법을 들어본 적이 없는 독자들은 그때의 필자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 글이 지구법학회를 소개하는 글이지 지구법을 소개하는 글은 아니니 간단하게만 언급하고자 한다. 지구법이란 현재의 법체계가 산업문명이 초래한 전대미문의 생태위기를 막지 못했고 도리어 심화‧확산시키는데 일조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법과 거버넌스의 전환 이론이다. 그 이론의 핵심은 현재의 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간 중심주의적인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비인류중심주의, 지구 중심적 세계관으로 나아가야 하고 법과 거버넌스는 이러한 새 패러다임의 세계관에 맞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 이 정도로만 소개하고 넘어가자(사실 더 들어가는 건 필자의 밑천이 딸려서 힘들기도 하다). 

지구법학회의 탄생은 지구와사람의 탄생 그 자체다. 가톨릭생명문화대학원 동기인 강금실 대표님과 최선호 변호사님이 토마스 베리(이 분이 지구법, 즉 Earth Jurisrprudence라는 말을 만들어낸 분이다)에 대한 강좌를 듣고 강원대 박태현 교수님에게 연락해 토마스 베리의 지구법에 대해 공부해 보자고 제안하는 게 지구법학회의 시초이자 지구와사람의 시작이다. 2015년 1월 8일, 첫 만남 때 7명이 모였는데 그중 아직도 지구법학회 회원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가 강 대표님과 최 변호사님, 지구법학회 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계속 역임하고 있는 박 교수님, 그리고 학회 총무를 맡았던 필자다(지금은 총무 자리를, 지구법 강좌를 통해 지구법학회로 유입된 최정호 교수님께 물려주었다). 필자를 포함한 위 네 사람은 모두 변호사들이다. 학회원 모두가 변호사는 아니지만 법률가가 대부분이다. 법률가라는 직업은 어찌 보면 가장 인간 중심적인 직업 중의 하나인데, 그런 직업을 가진 이들이 인간중심주의를 탈피한 지구 중심주의를 공부하고 있으니 그런 점에서도 지구법학회는 좀 독특하다. 법률가들이어서 기존의 경직된 법 문화에 더 지치고 그 대안에 더 목말라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 이후로 우리는 7년째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다. 대체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서 공부한다(코로나 시국에서는 줌에 ‘모였다’). 어느 모임이나 그렇듯이 그 사이에 회원들의 부침이 있었지만, (아래에서 설명하는) 책 출간과 지구법 강좌 등 공부의 외부 나눔을 통해서 새로운 회원들이 꾸준히 들어왔다. ‘법’ 관련 직업을 가진 이들이 여전히 다수이지만, 생태문명과 대안 연구에 관심 있는 다양한 분야의 회원들이 있다. 등록된 회원들은 30~40명, 꾸준하게 나오는 회원은 10여 명 정도다. 공부는 지구법과 관련된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지구법이라는 분야가 새로운 분야다 보니 한글 자료는 거의 없고 거의 영어 교재를 읽는다. 명색이 교수님, 연구자들도 있지만 영어에 쩔쩔매는 건 누구나 비슷하다. 발제를 맡으면 다들 괴로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준비해 온다. 그러면 발제자의 번역과 정리에 기대어 토론하며 서로의 생각과 사고를 확장시킨다. 발제 준비는 괴롭지만 토론은 즐겁다.  

장소도 한몫한다. 초기에는 법무법인 원의 세미나실을 이용해 공부했지만, 지구와사람의 보금자리 ‘유재’가 생긴 이후로 유재에서 공부한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아늑한 한옥은 공부의 맛을 업그레이드해 준다. 공식 공부가 끝나고 시작되는 2부를 더 즐기는 회원도 있다(필자를 포함하여). 간단히 먹을 걸 사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은 왜 그렇게 잘 가는지. 그래서 공부가 즐거운 지구법학회다. 


공부의 나눔 1 – 출판
지구법학회의 자랑은 우리가 공부한 것을 그냥 우리끼리만 나누는데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툴고 부족하더라도 공부의 소산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래야 우리도 성장하고 지구법 저변이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한 방법이 출판이다.   

첫 성과물은 우리가 공부한 첫 교재 『Wild Law: A Manifesto for Earth Justice』를 번역한 『야생의 법: 지구법선언』(2016, 로도스)이다. 역자는 학회 회장님 박태현 교수님 혼자이지만, 함께 공부한 과정이 없었다면 번역서가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책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환경 전문 변호사인 코막 컬리넌이 토마스 베리를 만나 그의 지구법 개념에 감명을 받고, 생태문명학자의 지구법 개념을 법률가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지구법 개념으로 쓴 책으로, 기존 법학의 패러다임을 뒤집고 인간과 자연의 권리를 새롭게 해석하는 법학의 새로운 틀을 제안한 최초의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두 번째 성과물은 역시 번역서인데,  『The Ecology of Law』를  『최후의 전환 :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커먼즈와 생태법』(2019,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출간하였다. 우고 마테이라는 이탈리아 법학자와,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히 알려진 미국 출신 물리학자 프리초프 카프라의 공저인 이 책은 그 저자의 조합도, 법학과 과학이라는 소재의 조합도 범상치 않은 데 그 조합으로 생태 문명 전환이라는 주제를 이끌어낸 독특한 책이다. (지구법학에 대해 전혀 모를) 소설가 장정일이 이 책에 대해  “최근에 나온 생태주의 관련 서적 가운데 가장 눈부신 발견을 제공하고 있으며, 생태주의 담론에 새로운 역능을 장착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2020. 2. 5. 자 한국일보 장정일 칼럼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게 될 법’). 마찬가지로 우리가 함께 공부한 책을 박태현 교수님이 주로 번역하고, 회원인 김영준 변호사가 힘을 보탰다. 

두 권의 역서를 낸 후 우리는 그동안 공부한 것을 우리의 언어로 정리해 보자는 데 뜻을 모았다. 지구법이 무엇인지 소개할 책이 필요했다. 학회 내에  ‘지구법학 개론서 집필 소모임’을 꾸려 1년 반쯤 작업을 했다. 예닐곱 명의 회원들이 각자 한 꼭지씩 써 와서 발표하고 토론을 거쳐 수정하고 목차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세미나를 거쳤다. 우리로서는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지만, 출판 시장에서 팔린다는 보장이 없는 책이어서 우리 책을 출판해 줄 출판사도 찾아야 했다.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의 공모 사업에 지원하여 교양 부분 저술로 선택을 받았다. 그렇게 나온 것이 『지구를 위한 법학,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지구중심주의로』(2020,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이다. ‘1부 지구법학이란 무엇인가’, ‘2부 지구법학과 국제사회’, ‘3부 지구법의 적용’, 이렇게 크게 세 분야로 나눠 6명의 회원이 한 꼭지씩 썼고, 강 대표님이 서문을 썼다. 이런 책이 팔릴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책 출간 후 1년쯤 뒤에 중쇄도 찍었다. 

우리 학회는 지금 세 번째 번역서를 준비하고 있다. 거의 2년간 공부했던 『Earth Law』라는 책을 10여 명의 회원들이 자원해 나눠서 번역을 했고, 현재 ‘번역 감수팀’을 운영 중이다.  


공부의 나눔 2 – 지구법 강좌
출판 사업과 함께 우리가 꾸준히 해 온 또 다른 나눔은 ‘지구법 강좌’다. 국내에 수많은 강좌가 있지만 지구법을 내건 강좌는 역시 지구법 강좌 하나뿐일 것이다. 법무법인 선과 2015년부터 매년 4회 강좌를 운영해 왔다. 지구법 강좌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연수과목으로도 인정된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분기별로 한 회씩 강좌를 하면서, 주제는 그때그때마다 다양하게 선정했다. 기후변화, 동물법, 에너지전환, 생명윤리, 미세먼지, 생태문명 등등. 

201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지구법에 집중해 하고 했다. 지구와사람의 보금자리 ‘유재’도 생기고, 우리 학회가 지구법학 개론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2019년에는 ‘지구법학의 A to Z’,  2020년에는 책 제목 대로 ‘지구를 위한 법학 – 인간중심주의에서 지구중심주의’라는 주제로 회원들이 강의를 맡았다. 2021년에는 지구법학회의 회원이자 지구와사람의 대표인 강금실 변호사님이 『지구를 위한 법학』(2021, 김영사)을 출간해 그 내용으로 지구법 강좌를 열었다. 이때는 연사의 스타성과 코로나 사태 이후 정착된 화상 회의 문화 덕분에 해외에서도 많이 참가했고, 변호사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강좌를 신청해 성황을 이루었다. 그만큼 지구법 저변이 넓어진 것이 우리에게도 확연히 보였다. 


네트워크의 확장 – 유엔 하모니위드네이처
지구법학회 초창기 시절인 2016년 초에 영국대사관의 지원을 받아 강 대표님 등과 영국 출장을 간 적이 있다. 그때 가이아 재단(토마스 베리의 지구법 개념 탄생에 큰 역할을 한 생태 지향 단체이다)을 만나면서 유엔 하모니위드네이처(Harmony with Nature)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유엔 하모니위드네이처는 2009년 지속 가능 발전 어젠다의 하위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고, 2016년부터 지구법의 관점을 본격적으로 접목하여 국제사회에 지구법을 알리고 홍보하며 각 회원국으로 하여금 지구법의 관점에 근거한 법과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유엔의 프로그램이다. 강금실, 박태현을 비롯해 일부 회원이 하모니위드네이처의 전문가 네트워크에 등록되었고, 2018년 지구와사람의 초청으로 위 프로그램 담당자 마리아 산체스가 한국에 와서 위 프로그램을 직접 소개하기도 하였다. 

유엔 하모니위드네이처와의 만남은 또 다른 만남을 주선했는데, 바로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와의 만남다. 이 연구소에서는 학술재단의 지원을 받아 중남미의 생태문명을 주제로 연구하던 중, 중남미에서의 지구법 관련 사례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유엔 하모니위드네이처를 알게 되었다. 연구소의 초청을 받은 마리아 산체스가 연구소에 지구와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같은 한국에 있으면서 서로의 연구 존재를 몰랐던 두 단체가 뉴욕의 유엔 본부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니 참 재밌는 일이다.

위 연구소는 올 초에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하면서 세션 하나를 통째로 지구법학회에 주었다. 반가운 일이었지만 발표 언어는 영어 또는 스페인어 또는 포르투갈어란다! (한국에서 발표하는데 한국어를 쓸 수가 없다니) 놀랍게도 지구법학회 4명의 회원들(강정혜 교수님, 오동석 교수님, 김영준 변호사님, 최정호 교수님)이 영어로 한국의 지구법 관련 주제에 대해 영어로 발표문을 썼고, 필자가 세션을 영어로 진행했다(물론 미리 써 둔 스크립트 덕분에 가능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처음에 품었던 질문, 왜 ‘간판’ 학회라는 질문에 답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다른 학회에서 ‘우리가 간판인데’라고 한다면 이를 다툴 의사는 전혀 없다. 우리 회원들 중 김왕배 교수님, 조상미 변호사님, 박태현 교수님, 최선호 변호사님처럼 지구법학회 뿐 아니라 다른 학회에서도 공부하는 회원들도 있는데 필자는 지구법학회만 하고 있어 사실 다른 학회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도 하다. 그들의 ‘간판’ 스토리도 궁금하다. 이 글이 세상에 '지구법'을 가지고 이리도 활발히 공부하는 학회도 있다고 알리는 계기가, 또 지구를 중심에 둔 법인 '지구법'에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글 정혜진 
변호사가 되기 이전에 신문기자 시절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구와사람에서 지구법센터장을 맡고 있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2019, 미래의창) 『이름이 법이 될 때』(2021, 동녘)를 썼고, 지구법학회 다른 회원들과 함께 『지구를 위한 변론』(2020,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저술에도 참가하였다.


[월간환경] 6월호 "지구와사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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